고려를 구한 영웅 강감찬
유치원생도 들어봤을 이름이 귀주대첩의 신화를 만든 고려의 강감찬 장군일 것입니다. 고려거란전쟁 드라마도 실제로 귀주대첩에서의 강감찬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강감찬은 948년(정종 3년)에 지금의 서울시 광악구 봉천동 낙성대에서 태어났습니다. 강감찬 장군의 탄생에 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어떤 사신이 큰 별이 어느 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찾아갔더니 그 집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강감찬이었습니다. 그래서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을 ‘낙성대’라고 합니다. 관악구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강감찬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강감찬은 성종 2년인 983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까지 되었습니다. 거란의 2차 침략 시 거란에 항복하자는 다른 중신들에 반대하며 전략상 일시 후퇴할 것을 주장하여 현종을 나주로 피란시키고, 하공진을 거란 진영에 보내 거란 성종을 설득하여 거란군을 철수 시킵니다. 거란군이 돌아가던 중 양규가 고려에서 물러가는 거란을 뒤에서 쳐 고려는 큰 승리를 거두고 거란은 많은 피해를 입고 물러갑니다.
귀주대첩과 강감찬
거란의 3차 침입 때 총사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상원수의 자리에서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귀주대첩은 1019년 2월 강감찬이 귀주에서 소배압이 이끈 10만의 거란군을 물리친 전투입니다. 강감찬은 지형과 날씨를 이용한 전략을 세워 거란군을 크게 물리칩니다. 이 귀주 대첩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힙니다. 흥화진에서 거란군이 쳐들어올 것을 미리 예측한 강감찬은 흐르는 강의 상류를 막아 적들이 안심하고 강을 건너게 하였습니다. 막혀있던 강물을 흐르게 해 순식간에 거란군을 덮치면서 절반 이상의 거란군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소배압은 남은 병사를 모아 고려왕을 잡기 위해 개경으로 향했지만 강감찬의 계책에 당하고 맙니다. 거란군이 올 것을 예측하 강감찬은 개경의 집과 음식을 미리 불태워 거란군이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합니다. 그래서 소배압은 귀주로 달아나게 되었고 강감찬과 귀주에서 전면전을 벌이게 됩니다. 결과는 우리가 알듯이 강감찬의 고려군이 대승을 거뒀고 거란의 10만 대군은 모두 죽었고 2000여 명과 소배압만이 도망치는데 성공합니다.
강감찬이 다른 역사 인물과 다른 점은 역사기록은 물론이고 문헌 혹은 구비설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설화 속 주인공으로 신격화되고 민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거란을 철수시킨 하공진
거란의 1차 침입 이후 성종은 압록강 동쪽에 있던 여진족을 몰아내고 장흥진과 흥화진 등에 훗날 강동 6주의 기초가 되는 성을 쌓았습니다. 하공진은 고려에서 거란으로 가는 길목인 압록강에 설치된 진도를 관할하는 압록도구당사라는 관직을 맡았습니다. 목종 때에는 궁궐 주변을 호위하는 일을 맡기도 했으며 이후 정변을 일으킨 후 권력을 잡은 강조의 밑으로 들어가 좌사낭중 자리에 올랐습니다. 현종이 즉위한 1010년에는 양계지역을 지키다가 마음대로 군사들을 동원해 동여진의 마을을 공격한 것도 모자라 전투에 패배한 일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이후 거란의 2차 침략 때 유배에서 풀려나고 고영기와 함께 거란군 진영에 들어가 거란 성종을 설득하여 거란군을 철수 시킵니다. 거란에 볼모로 잡혀가 거란 성종의 신임을 받았으나, 몇 차례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붙잡혔습니다. 신하가 되어 달라는 거란 성종의 청을 끝내 거절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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