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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 피난길 끝까지 지킨 지채문 장군 I 비겁한 탁사정 I 고려거란전쟁

거란의 침략에 맞서 싸운 지채문  

지채문은 현종 시기 중랑장(지금의 대령급 장수)으로 임명된 무관으로, 동북면을 방어하던 중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이 통주정투에서 대참패를 당해 서경이 위험해지면서 현종의 명령을 받고 서경을 지원하러 출전합니다. 당시 서경은 거란군에 항복한 노의 등의 배반자들의 설득에 따라 거란에 항복하기로 결정이 났기 때문에 서경에서는 고려의 지원군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지채문은 서경 내부의 내통자의 도움을 받아 서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채문

 

고려조정은 시간을 끌기 위해 거란에 항복 사절을 보냈는데 거란의 성종은 이를 믿고 서경에 점거할 병력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채문과 탁사정의 정예 기병들에게 몰살당합니다. 이 승리로 인해 고려군의 사기가 올라갔고 공격해 오는 거란군 3000여 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거란군을 추격하다가 역습을 당해 패하고 맙니다. 동북지역 도순검사, 탁사정이 이런 과정에서 두려움을 못 이겨 같은 편에게 거란 진영을 급습하자고 해놓고선, 본인은 남쪽을 도망을 갑니다. 이때 급습을 하기로 약속했던 발해 출신 대도수는 거란과 싸움을 하다 고립되어 결국에는 거란에게 사로 잡히게 됩니다..

 

거란군을 피해 도망가는 탁사정

 

거란군의 포로가 되는 대도수

 

 

현종의 든든한 호위무사 지채문 

지채문은 수도 개경으로 복귀했고 현종이 몽진을 떠나게 되었는데, 금군 50명과 왕후와 후궁, 그리고 재충순등으로 이루어져 임금의 몽진 일행으로는 매우 단출했습니다. 현종의 몽진 경로를 보면, 처음에 경기도 광주지역에 머물다가 점차 거란이 내려오자 전라북도를 거쳐 노령산맥을 지난 다음, 나주로 피신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지방의 호족들의 세력이 아주 강했고, 중앙에서 전라도 지역 사람들을 무시했기 때문에(왕건의 유언으로 전라도 출신 인물들은 요직에 쓰지 않음) 전라도 호족들이 왕실에 가지는 반감이 대단했습니다. 현종은 피난길에 수시로 호족 세력의 위협에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보면 지채문은 이들의 위협을 매번 물리치고 황제를 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도 가상인물이기는 하지만 지방 호족인 박진이 현종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채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거의 혼자 현종을 지켜냈습니다. 모두가 도망간 최악의 상황에서도 현종을 굳게 호위하였고 왕에 대한 충성심도 뛰어났습니다. 지채문이 현종을 지켜주지 않았다면 현종은 몽진 도중 볼모로 잡히거나 죽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