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성종 (야율융서)
거란식 이름은 야율문수노로 문수보살의 종이라는 뜻이었으며, 한식(漢式) 이름은 야율융서입니다.
그는 요나라(거란)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성종'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역사상 유명한 여걸인 승천태후의 섭정을 받았습니다. 친정 이후 집권기 동안 군사력 신장과 내전 수습에 힘을 기울여 요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였습니다.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남쪽의 북송, 동쪽의 고려 및 여진을 대대적으로 침공한 명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침공은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1차 고려거란전쟁 때는 서희의 외교에 낚이면서 강동6주를 내주었고, 직접 출전하였던 2차 고려거란전쟁 때는 양규라는 복병을 만나 아무 성과 없이 돌아와야 했습니다. 마지막 3차 고려거란전쟁 때는 총사령관 소배압이 귀주에서 강감찬에게 대패를 당하면서 고려와 강화를 맺고 더이상 고려와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종의 982년 즉위하여 1031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총 48년을 넘게 즉위하였습니다.
소태후
소태후는 재상의 딸이었는데 요나라 경종의 귀비가 됐다가 야율융서를 낳고 왕후가 되었습니다. 경종이 어려서부터 병치례가 많고 정치보다 사냥하며 다니길 좋아해서 소태후가 점차 정치일에 참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종이 서른다섯살에 세상을 떠나고 아들 야율융서가 12살의 나이로 제위에 오르자 그녀는 승천태후가 되어 섭정하게 됩니다. 섭정하는 동안 인재를 등용하고 각종 개혁 정책을 펴 요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한덕양과의 스캔들은 궁중에서도 유명했으며, 요성종도 한덕양을 아버지처럼 모셨다고 합니다. 전장에 나가 북송과 맞써 싸웠던 일화 유명합니다. 1009년 11월 57살의 소태후는 섭정에서 물러났으며 12월 남쪽으로 내려가던 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소배압
성종 즉위 초기 북송과의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 공로가 인정되어 경종의 딸인 위국공주 야율가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었습니다. 군사적 재능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감각도 있어서 실제로 성종이 소배압의 의견을 귀담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018년에 총사령관으로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강감찬에게 귀주에서 대패하고 요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에 성종은 분노하고 책임을 물어 모든 관직을 뺏습니다. 이후 2023년 회복은 되나, 그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려에서 크게 진 이미지때문에 소배압에 대해 무모하고 능력없는 장수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요나라에서는 백성들에게 칭송받는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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